Artist

박해수

•개인전 19회

콩세유갤러리, 스페이스 나무, 삼현사갤러리, A&B 갤러리, 훈갤러리, 인사아트프라자, 인사아트센터, 경인미술관, 단원미술관, 중국 광저우영사관, 독일 바덴바덴 등

•단체전 및 아트페어 200여 회

뉴욕 아트페어-메인 로비 전시, 독일 카를스루헤,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우즈베키스탄, 터키 이스탄불, 홍콩, 중국 베이징, 중국 광저우-메인 작가, Kiaf, Biaf, 서울 아트페어 등

•학력 및 경력

중앙대학교 회화학과 졸업

무수한 선에 담긴 자신을 향한 물음

가벼움이 중력을 지닌 지금 세상에서 작가의 긴 호흡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만난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박해수의 회화가 그렇다. 그의 작업 과정을 지켜보면 ‘작가는 어떤 사람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과 마주하게 된다.

작가는 끝없이 자신과 싸움을 하는 존재다. 승부가 나지 않는 싸움. 상처는 작품으로 남는다. 상흔이 처절할수록 사람들은 감동한다. 지독한 상처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 하는 작가는 그래서 고통스럽다. 고통의 축제 속에서 작가는 살아 있음을 확인받는 셈이다.

왜 이처럼 고통스러운 싸움을 하는 것일까.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하는 정체성의 문제를 풀어보고 싶기 때문이다. 박해수의 회화는 이런 생각을 원색적으로 토해내는 작업이다.

그의 작품은 자신을 밝히기 위한 끊임없는 고통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인다. 자신을 향한 물음이 너무도 처절해 작업하는 것이 고행으로 느껴질 정도다.

그의 작업은 분명 구상 회화지만 추상성이 강하다. 박해수 회화의 요체는 선이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도구를 이용해 가는 선을 캔버스에 무수히 반복해 찍어낸다. 선을 어떤 도구와 방법으로 만드는가 하는 일이 그의 회화의 전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자연 만물 속에 과연 선이 존재할까. 그림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선이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면과 면이 마주친 결과가 선으로 보이는 것이지 선 자체는 없다. 그래서 미술에서 선은 독자적 성격의 조형 요소로 대접받지 못했다. 20세기 들어와서야 선은 독립적 성격을 가지게 됐다. 이런 맥락에서 박해수의 선도 힘을 갖는다. 그에게 선은 자기 확인의 도구이기 때문이다.